2009년 01월 01일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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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1/01 00:00 | 공지 | 트랙백 | 덧글(7)

# by | 2009/01/01 00:00 | 공지 | 트랙백 | 덧글(7)
8. 진수의 평
관우는 1만 명을 상대할 만하며 그 시대의 용맹한 신하이다. 관우는 조조에게 보답하였으니 국사의 풍모를 지녔다. 그러나 굳세고 교만하여 그 단점 때문에 실패하였으니 이치상 당연한 것이다.
진수는 관우를 평함에 있어 의와 교만이란 두가지 요소를 집어냅니다. 이 두가지는 관우의 일생에 걸쳐 나타나는 성격입니다. 관우는 평생 의를 자신의 행동원리로 삼은 사람입니다. 유비를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섬겼으며, 그와 별도로 조조에게는 받은 것이 있으니 갚았습니다. 어찌보면 우직하고 어리석기까지한 관우의 의는 이젠 그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모든 가치관이 어지럽고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난세에 흔들리지 않고 순수한 가치를 추구하는 그 모습은 정녕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관우는 병사들에게 잘 대해주지만 사대부에게 오만하였습니다. 손권이 관우의 딸에게 구혼을 한 적이 있는데 관우는 이를 거부하고 사자를 모욕했다고 합니다. 관우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차지한 조조나 손권같은 인물들에게도 거침없는 일갈을 퍼부었던 것이겠죠. 이런 지나친 오만은 그의 패망의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그마저도 매력이었을 것입니다. 강한 자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그의 자부심은 차라리 시원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9. 신이 되다
어떤 사람은 삼국지를 읽으면서 세번 책을 집어던졌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관우가 죽었을 때고, 두번째가 유비가 죽었을 때, 마지막으로 제갈량이 죽었을 때라고 합니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관우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관공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의기와 자부심의 삶을 살다 간 관우에 대한 존경과 동경의 표시이겠죠. 관우의 지위는 갈수록 높아져서 사후 관왕에서 관성대제, 마침내는 도교의 관신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도 중국 곳곳에는 관우의 사당이 있습니다.
이미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저술하기 전부터 관우는 중국의 민초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미처 연의에 등장하지 못한 관우의 설화들도 있으며, 가상의 후손이 다른 소설에서 활약하기도 합니다. 수호지의 관승은 관우의 후손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천년도 넘는 시대를 뛰어넘어서까지 그 후손을 등장시킬만큼 민중들은 관우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신왕조를 열어 세상을 변혁한 조조도 아니고, 한황실 부흥을 내세운 유비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우직하게 의를 숭상한 한 무인이었습니다. 과거의 세상도 새로운 세상도 어디까지나 위정자들을 위한 논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자신들과 가깝고, 무엇보다고 순수한 그 정신을 숭상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관우라는 두글자는 생전의 관우에 그러한 수많은 인간들의 상념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10. 살아 숨쉬는 중화의 혼











# by | 2008/07/11 23:51 | 삼국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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